초년기
출생
창립자 정명석 선생은 양력 1945년 3월 16일 새벽 4시,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월명동에서 부친 정팔성과 모친 황길례 사이에서 6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생후 6개월 무렵 ‘단(丹, erysipelas)’이라는 병에 걸려 온몸이 퉁퉁 부어 죽게 되었으나, 어머니가 항아리에 묻기 전 기적적으로 눈을 떠 생존하였습니다. 이후 3일에 걸쳐 부기가 빠지면서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에서 살아났으니 명이 길다는 의미로 ‘명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출생지인 월명동은 곡식 농사조차 되지 않고 잡초와 엉겅퀴가 무성한 두메산골이자 저주의 골짜기였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100년 넘은 초가집은 낡고 썩은 지붕 사이로 비가 새어 들어왔으며, 벽지 속에는 진드기와 벼룩이 수백 마리씩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타지에서 땅굴을 파는 광산 일을 했고, 어머니는 나물을 꺾어 팔거나 쑥을 뜯어 쑥버무리를 만들어 식구들을 먹였습니다. 논은 없었으며, 밭이라고는 아버지가 광산에서 번 돈으로 마련한 화전 땅 500평이 전부였습니다.
정명석 선생이 여섯 살이던 1950년에는 6·25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밤이면 적을 피해 굴속에 숨어들고, 낮에는 농사일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전쟁 전에도 끼니를 잇기 어려울 만큼 가난했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생활은 더욱 궁핍해졌습니다. 극심한 굶주림으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도 하루하루 연명해야 했습니다.
인생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
정선생은 전쟁으로 인해 국민학교 입학이 늦어져 아홉 살에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심한 가난으로 3~4학년 때에는 배가 고파 산에서 찔레순을 꺾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습니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우유를 받으면 집으로 가져가 식구들과 함께 끓여 먹으며 굶주림을 견뎠습니다.
선생은 이같이 극심한 가난의 고통, 외롭고 쓸쓸한 환경의 고통, 배우지 못한 고통에 시달리며 10대 때부터 인생 문제에 부딪혀 머리를 싸매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이 태어나서 인생은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인생의 죽음과 허무함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나를 구원시키나?’ 생각했다. 또 ‘왜 하나님은 나를 안 도와주나?’ 하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이때는 인생 문제로 생각이 깊을 때였다.
결국 인생의 답은 종교로부터 오지 않으면 올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고로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우러러보고 사랑하며 사는 신앙의 길을 가게 됐다.
— 정명석, 『알파날: 역사의 기록』, 도서명문, 2025, 15–16쪽.
참고 문헌
- 정명석, 『죽음에서 살려 주신 절대신 하나님』, 도서명문, 2022.
- 정명석, 『알파날: 역사의 기록』, 도서명문, 2025.